유럽 페스트 사망자 수 치료제 치사율
판데믹은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몰살시킨 페스트(흑사병)를 비롯해 1918년 유럽 대륙에서 5,00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과 아울러서, 1968년 100만명이 희생된 홍콩 독감 등이 유행할 때 내려졌답니다.
14세기 유럽을 강타했던 페스트는 인류 최악의 전염병으로 손꼽힌답니다. 유럽 인구의 1/3을 사망케 한 페스트는 몽골제국이 중앙아시아 교역로(실크로드)를 통해 유럽으로 빠르게 확산시켰답니다. 페스트의 공포는 전쟁에서도 위력을 나타냈는데 몽골제국의 군대가 흑해 연안의 도시 카파(Caffa)를 공격하던 중 완강한 저항에 부딪히자 페스트에 감염돼 사망한 몽골군의 시체를 투석기를 사용해 성안으로 던져 넣어 승리를 얻었다고 한답니다. 최초의 생물학전인 셈인데 당시 몽골제국에 성을 빼앗긴 귀족들은 배를 타고 제노아 항구로 피신했으나 입항을 거부당하자 마르세유로 돌려 입항했답니다.
그렇지만 며칠 사이에 페스트가 급속히 퍼져 결국 마르세유 주민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답니다. 이어 페스트균은 프랑스 노르망디를 거쳐 독일로 퍼져 유럽 전체로 확산됐답니다. 페스트가 유럽에서 맹위를 떨치던 시기에는 의료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던 탓에 마땅한 치료약이 없었답니다. 사망률이 거의 100%에 달할 만큼 치명적인 데다 전파력도 어마어마하게 강해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답니다. 당시 유럽인들은 이런 공포감을 떨쳐 내기 위해 교회에 의지했답니다. 그렇지만 이런 종교집회는 집단감염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는 엄청난 재앙으로 이어졌답니다.
의약품이 없었던 당시 상황에서 교황청은 신자들에게 회개의 눈물로 섞은 고약을 만들어 먹으라고 했답니다. 일부 신자들은 성인의 성상 앞에 매달려 기도하거나 성지를 순례하는 등 스스로 고행을 자처하며 자신을 학대하는 퍼포먼스에 몰입했답니다. 아우러 일부는 전염병을 하나님의 진노라거나 마귀의 농간으로 규정하면서 광신도들을 자극하기도 했답니다. 지금 인류의 지식으로 보면 어처구니없는 진단과 처방이지만 당시 유럽인들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 이런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따랐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