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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손기정 프로필 나이 고향 키,마라톤선수 남승룡 금메달

leeodjn 2023. 7. 14. 02:27

손기정, 세계 정상에서 마라톤 포기한 진짜 이유…'꼬꼬무' 조명
- 2023. 7. 13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영웅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을 조명한다.

13일 방송될 '꼬꼬무'는 '총성과 함성, 보스턴 상륙작전' 편으로, 손기정의 그날 모습 뒤 숨겨진 진짜 이야기가 펼쳐진답니다.

때는 1932년 4월, 일본 도쿄의 한 여관 앞. 일장기를 든 수많은 일본인 사이 여덟 명의 조선 청년들이 서 있다. 그 중 한 청년이 기다란 무언가를 꺼내드는 순간, 탕! 총소리가 울려 퍼진다. 청년은 필사적으로 내달리기 시작했고 수 십 명의 일본인들이 그 뒤를 쫓기 시작한다. 과연, 일제강점기 도쿄 한복판에서 조선 청년들이 필사적으로 뜀박질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조선 청년들의 정체는 바로 양정고등보통학교 육상부였다. 일본 최대 달리기대회에 유일한 조선 팀으로 참가한 것. 심지어 결과는 우승으로 이날의 일등 공신은 구간 신기록을 달성한 양정의 비밀병기 신예 손기정, 그리고 고참 에이스 남승룡이었답니다.

대한민국의 마라톤 영웅, 손기정이 있기까지 그의 곁엔 항상 남승룡이 있었다. 어디서도 공개된 적 없었던 두 선수의 가슴 뜨거운 '마라톤 투쟁기'를 '꼬꼬무'에서 본격적으로 공개한다. 이번 방송에서는 당시 올림픽에서 두 선수가 신었던 신발, 손기정의 친필사인, 여행증명서 등 희귀한 자료들이 대거 공개될 예정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알고 있던 베를린 올림픽에서 시작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연들이 훗날 엄청난 대회로 이어지는 현장을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다.

한편 4년 뒤인 1936년 8월 9일, 올림픽 마라톤 종목 최초 동양인 우승자이자 마의 2시간 30분대를 깨고 세계 신기록을 세운 손기정. 1등으로 들어온 동양인 소년에게 모든 관심이 쏠렸지만, 정작 그는 시상대에서조차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아는 그날의 이야기입니다.


손기정의 베를린에서의 행적들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다. 의문의 체육복 사진부터 감옥에 갈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며 남긴 친필사인까지, 당시 손기정을 기억하는 외국인들은 그의 언행에 특별한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대체 베를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꼬꼬무'에서 공개한다. 또 조선으로 돌아온 올림픽 영웅 손기정이 가장 먼저 한 것은 바로 마라톤 은퇴였는데, 그가 세계 정상에서 마라톤을 포기해야만 했던 진짜 이유를 알아본다.

그로부터 9년 뒤, 해방이 되자마자 손기정은 동반자 남승룡과 그동안의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미국에서 열리는 보스턴 국제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손기정과 남승룡은 이미 고령의 나이였다. 서둘러 신예 선수를 발굴해야 하는데, 전국 팔도를 다 뒤져도 마음에 드는 인재가 없었다. 과연 두 사람은 제2의 손기정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답니다.

보스턴까지 넘어야 할 산은 또 있었다. 해방 직후, 여권이며 경비를 지원해줄 정부도 없는 상황에 손기정과 남승룡은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 최초의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의 짠내 나는 해외 원정기를 장트리오의 이야기로 들어본답니다.

원조 월드스타' 손기정이 부르는 '발의 노래'
- 2022. 8. 17

“우리 육상장거리의 혜성 양정고보의 손기정 군은 21일 정오 동경에서 열린 일본 마라톤연맹 주최의 마라톤대회에서 2시간26분14초란 경이적인 세계 최고기록을 지어 우승하여 명년으로 앞둔 제11회 세계올림픽대회에 우승할 제1후보로도 엄지손을 꼽게 되어 파견이 확정적이다.” -동아일보 1935년 3월21일자 호외 내용입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36년 8월9일. 올림픽이 열린 베를린의 하늘은 뜨거운 태양으로 눈부시고 있었다. 섭씨 30도. 마라톤 출발선에선 손기정의 이마에도 땀이 비 오는 흘러내렸다. 오후 3시3분. 출발 총성이 울렸다. 세계 각국 56명의 선수들이 출발선을 박차고 나갔답니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아르헨티나의 후안 사발라(전 대회 우승자)가 1시간11분29초의 기록으로 선두를 찍었다. 하지만 오버페이스였다. 그는 결국 30km 지점서 레이스를 포기했다. 4위로 달리던 손기정이 1위로 나섰다. 골인 지점까지 그를 앞선 선수는 없었다. 모두 그의 등 뒤에서 뛰었다.

2시간29분19초2. 올림픽 최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했다. 일제강점기에 비록 일본 대표선수로 출전했지만, 조선인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선사하며 민족의 자긍심을 높인 ‘사건’이었다. 동아일보 등 신문들은 8월10일 아침 일제히 호외를 발행하며 손기정의 세계제패 소식을 알렸답니다.

“우리의 손기정은 이겼다! 우리의 젊은 손기정은 세계에 빛나는 승리를 얻었다. <중략> 스포츠의 승리자 손기정은 스포츠 이상의 승리자인 것을 기억하자. …조선은 손기정, 남승룡 양 군에게 불우와 불행을 주었을 뿐이로되 양 군은 그래도 조선에 바치고 갚았다. 조선의 아들들아 이 맘을 아는가!” -동아일보 사설 내용입니다.

그렇다. 손기정은 한국인 최초의 세계적인 스포츠스타였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우승자’였다. 그는 왜 달렸는가. 아니 절망으로 가득한 그 시대에 왜 달릴 수밖에 없었는가.

“기쁨보다는 슬픔이, 웃음보다는 눈물이 앞섰던 시대였다. 내게 있어서나 모든 조선 민족에게 있어서나 희망보다 절망이 더 큰 시대였다. 그 절망과 혼돈의 시기에 마라톤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이 내겐 오히려 고통을 잊는 유일한 길이었다.”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 중에서 내용입니다.

가슴이 아려온다. 민족의 영웅이 된 식민지의 청년 손기정의 고뇌와 투쟁. 그리고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 가도 가도 끝없는 황톳길을 걸어 온 인간 손기정의 질곡의 삶. 그가 걸어온 장엄한 ‘발의 노래’에 벅찬 감동과 감격, 그리고 서글픈 눈물이 뒤범벅되어 흐른다.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 손기정 자서전’(손기정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이 새 옷을 입고 우리 앞에 다시 섰다. 그가 월계관을 머리에 썼던 8월9일에 맞춰 출간돼 더더욱 반갑다. 이 책은 1983년 출간한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의 개정증보판이다. 39년 만에 다시 세상에 온 것이다. 손기정 선생이 2002년 서거했으니 올해로 20주기가 된다. 1912년 8월29일 신의주 태생이니 탄생 1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답니다.

이번 책에는 손기정기념관 소장 사진 외에도 유물, 역사 사진 100여장이 추가됐다. 출판사 측에서는 “1984년 자서전 출간 이후 그리스 청동 투구 반환과 1988년 서울올림픽 성화 봉송, 2002년 타계에 이르기까지 손기정 선수의 외손자인 이준승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의 회고를 더해 손기정의 삶을 더욱 입체적이고 풍부하게 담아냈다”고 소개했답니다

“나를 기억하게 해 달라.” 손기정 선생의 마지막 유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우리는 세계적인 영웅 손기정을 얼마나 아는가. 일본에서는 ‘손기정 평전’까지 출간하며 연구를 하고 있는데 우리의 지금 어디에 있는가. 식민지 시대 청년의 정신은 아직도 유효하다. ‘나를 기억하게 해 달라’는 그의 유언은 우리를 향한 죽비소리처럼 들린답니다.